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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유시민' 수모(受侮)를 견디는 힘

by 불멸남생 2023. 3. 8.

민들레에 기제된 컬럼입니다.

[유시민 칼럼] 이재명 대표에 보내는 '잔인한' 고언과 응원

 

수모를 견디는 방법

‘정치업자’는 수모를 잘 견딘다. 수모(受侮)는 ‘남한테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 식당이나 백화점 직원들은 진상고객도 웃으며 상대한다.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생업과 일자리를 지키려고 모멸감을 억누르면서 수모를 견디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젊은이들을 안쓰러워하고 존경한다. 산다는 것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정치업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지역구 행사가 있거나 선거운동을 하는 날 아침, 그들은 ‘간과 쓸개를 빼서 베란다에 널어두고’ 집을 나선다. 아무리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유권자와 다투지 않는다. 웃으며 좋은 말로 응대하려고 노력한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베란다의 간과 쓸개를 걷어 다시 장착하고 혼잣말로 누군가를 욕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덜어낸다. ‘정치업자’는 수모를 견디는 힘이 뛰어나다.

반면 ‘정치인’은 그 힘이 약하다. 자신이 대의를 위해 헌신한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더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다시 말하지만 유권자는 모든 직업정치인을 일단 ‘정치업자’로 여긴다. 대중에게 ‘정치가’로 인정받으려면 오랜 시간 수모를 견뎌야 한다. 대의를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리면서도 현실 정치판에서 밀려나지 않고 생존해야 한다. 수모를 견디는 능력이 없이 진보 정치의 지도자가 된 사람은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수모를 견뎠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한 후 민주당 대표를 하는 동안 경쟁하는 정당뿐 아니라 안철수‧박지원 등 민주당 내부의 반대세력에게 비열한 모욕을 숱하게 당했다.

나는 십 년 정도 직업 정치를 했다. 국회의원과 장관을 했다. 그러나 수모를 견디는 힘을 기르지는 못했다. 나는 정치로 살아가려고 정치를 하지 않았다. 정치를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으로 그랬다는 말이다. 대중은 나를 ‘정치업자’로 여겼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런 시선을 오래 감당하지 못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기자들이 쏟아내는 적대적인 비판을 참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정치가 매우 중요하고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으로 정치를 선택한 분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정치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존경받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은 활동이었다. 대의에 헌신하는 훌륭한 인생보다는 즐거운 일을 하는 나다운 인생을 찾고 싶었다. 나처럼 수모를 견디는 힘이 약한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정치를 하고 싶다며 의견을 물으면 거의 언제나 말리곤 한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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